딸, 어제 네가 아빠에게 물었었지?
어렸을 때 재밌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그때도 말을 하긴 했지만 딱히 기억나는 건 몇 안 되다 보니 말을 해주기 어려운데 오늘은 갑자기 떠오르는 게 있다.
지금의 넌 이해하기 어려울 텐데, 어리면 어릴수록 좀 고지식한 면이 있어.
특히 아빤 기본적으로는 고지식한 사람인데 어렸을 땐 얼마나 심했겠어? 오죽하면 별명이 바른생활 사나이였다니까?
약속은 정말 지키려고 노력했고 내가 그러는 만큼 상대의 약속도 받아내려고 노력했지. 그게 사소한 거라도 말이야. 그러다 보니 함부로 약속하지 않기도 했지.
한번은 친구가 아빠에게 게임을 팔아주기로 약속했던 때가 있어.
아빤 시세에 맞춰 사기로 했는데 친구가 자꾸 약속을 어기는 거야?
근데 아빠가 정말 하고 싶은 게임이라 기대가 엄청났지.
이게 문제였어.
친구가 약속을 세 번쯤 깼을까? 정말 너무 화가 나고 열이 받는 거야. 그래서 친구랑 엄청 싸웠지.
어느 정도로 싸웠냐면 선생님한테 불려 갈 정도로.
아빠는 선생님한테 얘기를 했지 친구가 약속을 안 지켰다고. 물론 그때 그건 아빠에게 중요한 일이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사소하고 별거 아닌 일이지만.
그래서 어떻게 됐냐면 그냥 넘어갔어. 싸운 건 싸운 걸로.
약속은 없던 일로. 게임은 못 샀어. 친구랑은 그냥 잘 지냈지 뭐.
여기서 중요한 건, 친구가 약속을 안 지킨 것도 친구 잘못이지만 그걸 가지고 약속을 지키라며 다그친 건 아빠 잘못이지. 그때는 그걸 몰랐어.
지금이야 지킬 약속과 그냥 말로만 하는 약속을 좀 구분하게 됐지만 아직도 어렵다.
어때? 그래도 아빠 어렸을 때 일 하나 더 알게 됐지?
다음에 기억나면 또 알려줄게.
그럼 오늘 하루도 재밌게 보내고 사랑한다.
2026년 8월 11일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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