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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10일

오늘 사진을 넘기다가 예전 크루즈 여행을 갔을 때 사진이 나오더라. 그때 참 재밌었지? 아쉬운 게 있다면 아빠가 영어를 참 못했다는 거지. 일본을 방문할 사람은 지금 입국 심사를 하라는 안내 방송을 하는데 그걸 잘못 듣다니. 영어를 좀 더 잘했다면 그럴 일도 없었을 텐데 그건 좀 아쉽네. 그래도 덕분에 입국 심사를 못 받아 못 내렸지만 배에서 전세 낸 듯 실컷 놀았잖아? 그리고 너희가 아빠 놀릴 만한 것도 생겼고. 아빠가 영어를 좀 생존 영어로 막 배워서 그런가? 안 하니까 또 못하게 되더라고. 그래도 말이라도 해보게 된 계기가 사람들과 놀러 가려고, 같이 만난 사람과 밥이라도 먹어볼까 싶어 연습했던 거였는데, 이게 도움이 되어서 그래도 규모는 작지만 나름 영국에 본사를 둔 외국계 회사까지 다녔었다? 그래서 막 외국 테크니션과 임원들 만나 일도 했었다. 대단하지? 물론 유창하진 않아서 번역기 열심히 썼어. 어쨌든 또 필요성이 없어지니 잘 안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못하게 되고 못하다 보니 안 하게 되는 악순환이 되더라. 그래도 다음 여행을 위해선 좀 연습을 해야 하는데 그건 또 귀찮다. 하지만 또 안 하다 보면 써먹을 기회가 왔을 때 써먹지 못하고 눈만 데굴데굴 굴리면서 손짓 발짓할 생각하니 그건 또 싫고 귀찮네 정말. 그러니 너네가 아빠의 통역사가 돼줘. 어차피 학교에서 배우니 잘 배우란 말이야. 그래야 아빠가 또 여행에 데리고 가지. 언젠간 그럴 날이 오길 바라며, 언제나 그렇듯 오늘도 사랑한다. 2026년 8월 10일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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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8일

너희는 아직 모르겠지만, 요즘 사람들 사이에선 주식이 난리야. 엄청 폭등했다가 폭락을 하고 누구는 레버리지를 써서 망했다느니 그리고 지수가 상한가를 치는 게 말이 되냐 등등등 다행인 건 우리는 이미 상승장 전에 돈이 필요해 다 빼서 쓰는 바람에 이런 풍파를 비껴났다는 건데 덕분에 상승장도 못 누렸어. 그래서 엄마가 엄청 아쉬워해. 삼전, 하이닉스로만 천만 원 들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오르기 전에 팔게 됐는지 모르겠다며. 사람마다 투자야 다 자기만의 방법이 있는 거니 그건 해봐야 아는 거고 아빠도 잘 몰라서 나중에 너희가 직접 해보면서 아빠에게 알려줘. 그런데 그것보다 사실 이게 중요한 것 같아. 요즘 주식이 너무 많이 떨어지고 사람들의 화가 많이 쌓였잖아? 그리고 안타까운 사고도 있었던 것 같고. 그럼 사람들은 꼭 희생양을 찾아. 근데 그건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는 거 같아. 정부는 개인 탓, 개인들은 정부 탓, 또 누구는 공매도나 다른 세력 탓. 저 중에 사실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 그런데 이건 알아두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서 있는 곳에 따라 행동과 말이 달라져. 당장 아빠만 해도 주식으로 폭락장을 겪었으면 동참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비껴나 있어서 이렇게 속 편한 소리를 하는 거지. 그러니 사람과 만나 이야길 할 때는 꼭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배경도 같이 살펴봤으면 좋겠다. 같은 이유로 항상 일관성 있는 사람의 말은 의심을 해봐야 해. 항상 그 자리에만 있어서 그런 의견을 내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아직 어린 너희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어차피 안 보여줄 거니까~ 그럼 오늘도 사랑한다 2026년 8월 8일 아빠가

2026년 8월 7일

막내라, 아들아. 미안하지만 아빠는 막내가 아니라 네 심정은 잘 모르겠다. 어제 네가 누나가 자꾸 시키고 태권도장 형, 누나들이 막내라고 신경 안 써줘서 막내는 너무 힘들다며 “난 평생 막내야”라고 엉엉 울던데. 아! 이 말이 압권이었어. “막내라서 좋은 건 내가 오래 살 수 있는 거야?” 아빠가 여기에 대답은 못 해줬어. 일단 너무 웃기기도 했는데, 흔히 가는 덴 순서 없다잖아. 엄마도 웃으면서 이야기하더라. 근데 이제 일곱 살인 네게 이 이야길 할 순 없잖아? 그렇게 억울한 게 생기면 어제처럼 이야기하고 울고 풀어. 아빠 말이 위로나 해결책은 되지 않겠지만, 사실 긁어 부스럼이지 않으면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누나도 누나 나름의 고충이 있고 불공평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아빠도 어렸을 때 네 고모가 곤지암 할머니께 이런 이야길 하면 이해를 못 했고 지금도 그래. 세상은 언제나 나에게 불공평하고 내가 제일 힘든 법이니. 그래도 넌 잘하고 있어. 누나는 지금 초등 저학년인데 두 자릿수 덧셈 엄청 어려워하고 있잖아? 반면에 넌 어제 아빠한테 25+25=50이고, 이걸 각 자릿수에 맞춰 계산하는 걸 말로도 블록으로도 버벅이지 않고 정확하게 설명했잖아? 어제 아빠랑 엄마가 얼마나 감탄했는지 아냐? 그리고 딸내미야. 넌 동생 좀 그만 시켜 먹어라. 네 방 정리 정도는 네가 해야 하지 않겠니? 그걸 꼭 앉아서 동생을 부려 먹어야겠어? 이런 말 하면 도와주는 대신 뭐 해주기로 했다, 서로 거래했다 하며 울음 가득한 눈으로 너도 억울해할 텐데. 에휴. 됐다. 이러나저러나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고, 오늘도 사랑한다. 2026년 8월 7일 아빠가

2026년 8월 6일

글쎄, 재밌는 이야기 하나 들려줄까? 늘 그렇듯 아빠만 재밌는 이야기지만. 아빤 지금도 그렇지만 어렸을 때도 삼국지를 참 좋아했어. 그때 전략 삼국지라고 60권짜리 만화책 시리즈가 집에 있었거든. 이상하게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다른 만화책을 보는 건 못하게 했는데, 그건 봐도 뭐라고 안 하더라. 그래서 마르고 닳도록 봤지 정말. 근데 거기서 유비가 참 마음에 들었어. 유비는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진심을 갖고 찾아오더라고. 지금도 그렇지만 아빠는 친구를 만나거나 사람을 사귈 때 누가 먼저 오는 법이 없거든. 그래서 이 부분을 아버지, 너희에겐 곤지암 할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그러시더라고. “목마른 놈이 우물 파야지 별수 있겠냐. 그리고 친구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괜찮다.” 정확한 문장은 아니지만 이런 말이었어. 사실 이상한 말이고 엉뚱한 말이잖아? 아니, 아빤 친구가 먼저 다가오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는데 말이야. 그런데 그 이상한 말을 듣고 지금까지 그게 일종의 지침이 됐고, 그다음부턴 친구를 사귀거나 안 만나게 될 때도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됐어. 아빠한테 맞는 말이었나 봐. 물론 여기서 재밌는 게 있는데, 이 이야기를 너희 곤지암 할머니께 했더니 “웃기시네. 자기도 그걸 못해서 힘들어하면서 애한테 별소리를 다 하네.” 라고 하시면서 콧방귀를 뀌시더라. 이제 너도 학교에 가는 나이라 요즘 부쩍 아빠에게 친구 때문에 속상하다는 말을 곧잘 하는데, 저런 말을 해줄 수도 없고 고민이다. 그래도 부딪히다 보면 너희 나름의 방법을 찾아내겠지? 그때까지 고생 좀 하고 머리도 굴려보고 해봐. 방법은 분명 있을 거야.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고 아프지 말고. 특히 아들, 넌 부딪히지 좀 말아라. 엄살도 심한 게 매일 어디 부딪혀서 아프다고 찡찡대고 말이야. 그럼 오늘도 사랑한다. 2026년 8월 6일 아빠가

2026년 8월 5일

그러고 보면 예전에 아빠의 아빠인 할아버지도, 그리고 할머니도 아빠가 군대 훈련소 시절에 거의 매일매일 편지를 써 주셨던 적이 있었지. 그래도 나름 꽤 긴 기간을 매일매일 편지를 써 주셨는데, 마침 그 생각이 나서 아빠도 이렇게 써 봐. 물론 너네가 언제 볼지는 모르겠다. 아마 계속 못 볼 수도 있겠지. 안 보여줄 거거든. 그래서 뭘 써 볼까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다가 예전 일이 생각나네. 아마 지금부터 삼 년 전인가, 아니 그것보다 더 됐을 거다. 사 년인가 됐을 거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빠가 세탁소를 창업했거든. 육아 휴직 중인 회사를 때려치우고.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눈이 멀었나 보지 뭐. 그때 아빠 기억으로는 딸내미 네 나이가 세 살, 아들 네 나이가 아마 한 살이었을 거야. 물론 돌은 지났지. 처음에는 매장 마감 시간이 여덟 시라 그 시간에 퇴근을 해 집에 아홉 시에 무난하게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게다가 엄마 아빠가 둘이 같이 일하니까 한 사람은 먼저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 처음엔 엄마만 하는 걸로 했지만, 시작하기 직전에 일이 너무 많아 보인다며 엄마가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는 거야. 실제로도 일이 너무 많았지.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이건 평생 할 수 있는 일이니, 하다 보면 육아에도 조금 더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해서 같이 하게 됐지. 그런데 웬걸, 퇴근 시간이 여덟 시인데 첫 주에 집에 새벽 두 시에 들어갔어. 그럼 너네는 누가 봐 줬냐 하면 할머니가 봐 줬지. 인천 할머니랑 곤지암 할머니가 번갈아 오셨어. 나중엔 곤지암 할머니가 전담으로 봐주셨는데, 그 생활이 너네도 알다시피 2년으로 꽤 길었지.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딸내미 네가 그런 얘길 하는 거야. 네가 아빠 옆에 누워 잠들려고 할 때, 어린이집에서 “엄마 아빠가 어디 갔지. 못 말려 정말.” 이랬다고 아빠인 나한테 얘기하는 거지, 계속. 그때는 정말 ‘내가 뭘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 근데 그럴 수밖에...

자영업자가 되었다.

자영업자. 나와는 맞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했고 될 일이 없다 생각했다. 거기다 일하면서 만났던 마트 사장을 보면서 영화 전우치의 대사가 생각나는 일도 많았기에 더더욱 나와는 맞지 않는 일이라 생각했다. "장사꾼은 한치의 이문을 위해 저울을 속이는..." 그런데 지금은 한달이 넘었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은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걸어오다보니 자영업자가 되었다. 앞으로 벌이가 좋아질 수도 있지만 지금 드는 생각은 그래도 회사 다닐 때가 속편하다. ㅎㅎ

오늘의 풍경 - 탄천로

퇴근하는 길에 그냥 갈 수 없어 잠시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