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재밌는 이야기 하나 들려줄까? 늘 그렇듯 아빠만 재밌는 이야기지만. 아빤 지금도 그렇지만 어렸을 때도 삼국지를 참 좋아했어. 그때 전략 삼국지라고 60권짜리 만화책 시리즈가 집에 있었거든. 이상하게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다른 만화책을 보는 건 못하게 했는데, 그건 봐도 뭐라고 안 하더라. 그래서 마르고 닳도록 봤지 정말. 근데 거기서 유비가 참 마음에 들었어. 유비는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진심을 갖고 찾아오더라고. 지금도 그렇지만 아빠는 친구를 만나거나 사람을 사귈 때 누가 먼저 오는 법이 없거든. 그래서 이 부분을 아버지, 너희에겐 곤지암 할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그러시더라고. “목마른 놈이 우물 파야지 별수 있겠냐. 그리고 친구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괜찮다.” 정확한 문장은 아니지만 이런 말이었어. 사실 이상한 말이고 엉뚱한 말이잖아? 아니, 아빤 친구가 먼저 다가오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는데 말이야. 그런데 그 이상한 말을 듣고 지금까지 그게 일종의 지침이 됐고, 그다음부턴 친구를 사귀거나 안 만나게 될 때도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됐어. 아빠한테 맞는 말이었나 봐. 물론 여기서 재밌는 게 있는데, 이 이야기를 너희 곤지암 할머니께 했더니 “웃기시네. 자기도 그걸 못해서 힘들어하면서 애한테 별소리를 다 하네.” 라고 하시면서 콧방귀를 뀌시더라. 이제 너도 학교에 가는 나이라 요즘 부쩍 아빠에게 친구 때문에 속상하다는 말을 곧잘 하는데, 저런 말을 해줄 수도 없고 고민이다. 그래도 부딪히다 보면 너희 나름의 방법을 찾아내겠지? 그때까지 고생 좀 하고 머리도 굴려보고 해봐. 방법은 분명 있을 거야.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고 아프지 말고. 특히 아들, 넌 부딪히지 좀 말아라. 엄살도 심한 게 매일 어디 부딪혀서 아프다고 찡찡대고 말이야. 그럼 오늘도 사랑한다. 2026년 8월 6일 아빠가
그러고 보면 예전에 아빠의 아빠인 할아버지도, 그리고 할머니도 아빠가 군대 훈련소 시절에 거의 매일매일 편지를 써 주셨던 적이 있었지. 그래도 나름 꽤 긴 기간을 매일매일 편지를 써 주셨는데, 마침 그 생각이 나서 아빠도 이렇게 써 봐. 물론 너네가 언제 볼지는 모르겠다. 아마 계속 못 볼 수도 있겠지. 안 보여줄 거거든. 그래서 뭘 써 볼까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다가 예전 일이 생각나네. 아마 지금부터 삼 년 전인가, 아니 그것보다 더 됐을 거다. 사 년인가 됐을 거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빠가 세탁소를 창업했거든. 육아 휴직 중인 회사를 때려치우고.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눈이 멀었나 보지 뭐. 그때 아빠 기억으로는 딸내미 네 나이가 세 살, 아들 네 나이가 아마 한 살이었을 거야. 물론 돌은 지났지. 처음에는 매장 마감 시간이 여덟 시라 그 시간에 퇴근을 해 집에 아홉 시에 무난하게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게다가 엄마 아빠가 둘이 같이 일하니까 한 사람은 먼저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 처음엔 엄마만 하는 걸로 했지만, 시작하기 직전에 일이 너무 많아 보인다며 엄마가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는 거야. 실제로도 일이 너무 많았지.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이건 평생 할 수 있는 일이니, 하다 보면 육아에도 조금 더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해서 같이 하게 됐지. 그런데 웬걸, 퇴근 시간이 여덟 시인데 첫 주에 집에 새벽 두 시에 들어갔어. 그럼 너네는 누가 봐 줬냐 하면 할머니가 봐 줬지. 인천 할머니랑 곤지암 할머니가 번갈아 오셨어. 나중엔 곤지암 할머니가 전담으로 봐주셨는데, 그 생활이 너네도 알다시피 2년으로 꽤 길었지.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딸내미 네가 그런 얘길 하는 거야. 네가 아빠 옆에 누워 잠들려고 할 때, 어린이집에서 “엄마 아빠가 어디 갔지. 못 말려 정말.” 이랬다고 아빠인 나한테 얘기하는 거지, 계속. 그때는 정말 ‘내가 뭘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 근데 그럴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