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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31일

지금은 거의 기억을 못 하지만 아빠가 어렸을 때, 할머니가 참 이것저것 많이 시키셨지. 놀기도 많이 놀았고 학습지도 참 많이 했어. 할머니 말씀으로는 뭘 잘할지 몰라 이것저것 시켜 보셨다고 하더라. 오늘은 그중에서 한자를 해 볼까? 역시 이것도 학습지로 했어. 그런데 한자는 다른 것과 다르게 배우기 참 쉽더라고. 영어나 산수는 꽤나 어려웠는데 한자는 그저 외우기만 하면 된단 말이지? 거기다 어떤 건지 글자를 보면 이거겠구나 알아볼 수 있는 것도 있고. 큰 대(大)만 봐도 그렇잖아? 사람이 팔 넓게 뻗고 있으니 크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 아빤 옛날에 외우는 건 자신 있었거든. 물론 그땐 그랬어. 지금은 아니지만. 그리고 이전에도 말했지만 집에서 신문을 봤는데, 정말 정말 정말 한자가 많아서 한자를 알아야만 읽을 수 있었어. 그뿐인가? 책도 조금 어려운 단어는 전부 한자로 되어 있어서 써먹기 좋았지. 외운 걸 바로 써먹을 수 있으니 더 잘 외워지고 얼마나 재밌겠어? 그렇게 아빠가 처음 한자 공부를 할 때가 김영삼 대통령 시절, 국민학생 때였어. 국민학교는 지금은 이름이 바뀌어서 초등학교가 됐어. 그때 민족주의 열풍이 불었었거든. 국민학교도 그때 초등학교로 바뀐 거고. 어쨌든 한자 병기가 그 시절 이후에 잘 안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빤 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다른 사람은 컴퓨터 때문이라고들 하더라? 어쨌든 그 이후 한자 병기가 사라져서 한자 자체는 잘 안 보이지만, 그래도 한국어엔 한자어가 많아 그때 배워 두길 잘한 거 같긴 해. 자, 퀴즈. 이 편지엔 어떤 한자어가 있을까요? 그럼 오늘도 재밌는 하루 보내고 오늘도 사랑한다 2026년 8월 31일 아빠가 정답! 먼저 딱 봐도 한자어 같은 것들부터. 한자(漢字) — 漢은 한나라 한, 字는 글자 자. 옛날 중국 한나라에서 쓰던 글자란 뜻이야. 한자어(漢字語) — 거기에 語(말씀 어)가 붙었어. 한자로 만든 낱말. 학습지(學習紙) — 學은 배울 학,...

2026년 8월 18일

여름이라. 어렸을 때, 그러니까 94년도인 것 같은데 그때 정말 더웠어. 여름은 항상 덥긴 했는데 그땐 유독 더 덥더라. 너희 할머니는 아빠가 매번 "더워 더워"를 말하고 다니면 대야에 물을 받아 발을 담그고 선풍기를 쐬면 시원할 거라며 그렇게 해주곤 하셨지. 그리고 덥다고 계속 말하면 더 더우니 참으라는 말도 덧붙이셨고. 그땐 지금처럼 집에 에어컨이 없었거든. 연도는 좀 헷갈리는데, 아마 그때일 거야. 어떻게 된 건진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강릉 경포대로 가게 됐어. 사실 너희 할아버지는 일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시고 바빠서 어디 갈 짬을 잘 못 냈거든. 근데 어쩐 일인지 해수욕장에 가게 된 거야! 정말 미친 듯이 놀았는데, 문제는 다음 날이었지. 물놀이할 때 삼각 팬티 같은 수영복만 입고 놀다 보니 등판과 팔다리, 심지어 얼굴까지 벌겋게 달아올라서 피부가 양파 껍질처럼 벗겨지는 거야. 한동안 그걸 정신없이 떼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어. 정말 계속 벗겨지더라. 그때도 참 더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거기엔 명함도 못 내밀게 더우니 큰일이다. 밖에서 노는 건 엄두가 안 날 정도니 원. 너희도 해가 너무 뜨거우니 밖에서 조심히 놀고, 아빠처럼 아무 생각 없이 놀다 보면 햇빛에 살이 타서 홀라당 벗겨진다. 그럼 오늘 하루도 잘 보내고 딸내미, 넌 오늘 개학인데 방학 숙제는 다 끝나고 학교 간 건지 모르겠다. 오늘도 사랑한다. 2026년 8월 18일 아빠가

2026년 8월 5일

그러고 보면 예전에 아빠의 아빠인 할아버지도, 그리고 할머니도 아빠가 군대 훈련소 시절에 거의 매일매일 편지를 써 주셨던 적이 있었지. 그래도 나름 꽤 긴 기간을 매일매일 편지를 써 주셨는데, 마침 그 생각이 나서 아빠도 이렇게 써 봐. 물론 너네가 언제 볼지는 모르겠다. 아마 계속 못 볼 수도 있겠지. 안 보여줄 거거든. 그래서 뭘 써 볼까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다가 예전 일이 생각나네. 아마 지금부터 삼 년 전인가, 아니 그것보다 더 됐을 거다. 사 년인가 됐을 거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빠가 세탁소를 창업했거든. 육아 휴직 중인 회사를 때려치우고.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눈이 멀었나 보지 뭐. 그때 아빠 기억으로는 딸내미 네 나이가 세 살, 아들 네 나이가 아마 한 살이었을 거야. 물론 돌은 지났지. 처음에는 매장 마감 시간이 여덟 시라 그 시간에 퇴근을 해 집에 아홉 시에 무난하게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게다가 엄마 아빠가 둘이 같이 일하니까 한 사람은 먼저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 처음엔 엄마만 하는 걸로 했지만, 시작하기 직전에 일이 너무 많아 보인다며 엄마가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는 거야. 실제로도 일이 너무 많았지.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이건 평생 할 수 있는 일이니, 하다 보면 육아에도 조금 더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해서 같이 하게 됐지. 그런데 웬걸, 퇴근 시간이 여덟 시인데 첫 주에 집에 새벽 두 시에 들어갔어. 그럼 너네는 누가 봐 줬냐 하면 할머니가 봐 줬지. 인천 할머니랑 곤지암 할머니가 번갈아 오셨어. 나중엔 곤지암 할머니가 전담으로 봐주셨는데, 그 생활이 너네도 알다시피 2년으로 꽤 길었지.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딸내미 네가 그런 얘길 하는 거야. 네가 아빠 옆에 누워 잠들려고 할 때, 어린이집에서 “엄마 아빠가 어디 갔지. 못 말려 정말.” 이랬다고 아빠인 나한테 얘기하는 거지, 계속. 그때는 정말 ‘내가 뭘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 근데 그럴 수밖에...